이태준(1883~1921) (인물) ( 5 )
Description
1883년 11월 21일 경상도 함안도호부 평관면 평광리(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에서 아버지 이질(李瓆, 1861 ~ ?. 2. 8)과 어머니 경주 박씨(慶州 朴氏) 박평암(朴平岩, 1860 ~ ?. 3. 21)[6]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안창호 선생과 친분을 쌓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1914년 몽골에 가서 의료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몽골 마지막 칸 복드 칸의 주치의였다고 하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을 세워 의료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몽골인의 70%가 걸렸다던 성병 치료에 탁월했다고 한다. 그리고 1919년 당시 몽골 최고 훈장이었던 '에르데니인 오치르(ᠡᠷᠳᠡᠨᠢ ᠶᠢᠨ
ᠸᠴᠢᠷ/Эрдэнийн Очир)'를 받았다고 한다.
동시에 개신교 선교 활동과 의열단에 가입하고[7]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 등의 독립운동 중[8] 당시 몽골의 지배자였던 몽골의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사병들에게 붙잡혔고, 1921년 2월 2일 결국 피살됐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기념비를, 2001년에는 기념 공원이 몽골 정부와 연세대 의료원, 연세대 총동문회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2017년 9월 29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그와 그의 부인 김은식을 기리는 부부위패가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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