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때 고향인 검암리로 돌아와 곤지재(困知齋)를 짓고 시냇가에 두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후 간송(澗松)이라고 자호하였다. 중국 송대 범질(范質)이 “동산의 화려한 꽃은 일찍 피었다가 먼저 시들고,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한 모습으로 늦게까지 푸름을 머금고 있네."라고 표현한 시구에 근거해 호를 삼았다. 20세 때인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조임도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학문을 탐구하길 원했으므로 32세에 과거 시험을 그만두고 오로지 독서에 전념하였다.